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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쉽/친구들

[블로거 팸투어] 최치원이 여전히 지키고 있는 곳 상림

  상림은 우리나라의 최초 인공 숲으로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홍수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상림안의 머루터널을 지나 상림을 걷기 시작하였다. 상림은 짙은 갈색을 띄고 있었는데, 꽃들이 9월 달에 피기 때문이다. 꽃들을 보면 상림을 걷는 데 기분이 좋았었을 텐데 생각이 들었다. 걷다가 저 멀리 내가 매우 좋아하는 그네가 보여 달려갔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네를 참 좋아해서 놀이터만 갔다면 그네로 달려갈 만큼 그네사랑이 특별하다. 하지만 상림에 있는 그네는 특이하면서도 친숙했는데, 바로 춘향이와 이몽룡이 나오는 이야기에 나오는 옛날 그네이었다. 앉기에는 애매했고, 서서 너무나도 긴 줄을 잡아 그네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았다. 그네가 어느 정도 높이 올라가 내 얼굴이 바람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갑자기 급 무서움이 생겼다.

 

  보통 놀이터에 있는 그네랑은 흔들림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긴 줄이 자칫하면 획 뒤집어 질 것 같아 얼른 내려와 다음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였다. 그리고 그 그네 근처에 있던 함화루도 잠시 구경하고, 불상도 보았다.

 

 

  좋은 설명을 받으며 고려시대의 불상과 신라시대의 불상에 대해 다른 느낌이 있다며, 고려시대의 불상은 둔한 느낌, 신라시대의 불상은 섬세한 느낌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 불상은 손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는데 이것도 특이해 보였다. 다음으로 이곳 상림에 유명한 나무 연리목을 보았다. 연리목은 사랑나무라 부르는데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하나가 된 것을 연리목이라고 하며 가지가 합쳐서 하나가 된 것을 연리지라 한다.

 

  삼국사기의 신라 내물왕 7년 시조묘의 나무와 고구려 양원왕 2년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지가 된 기록과 고려사의 광종 24년, 성종 6년에 연리지의 출현을 기록했을 정도로 오래되고 역사가 있는 나무이다. 특히나 부부간의 금슬이나 남녀 간의 애정이 깊음을 비유해서 커플들이 자주 올 것 같았다. 전해지는 말로 이 나무 앞에서 서로 손을 꼭 잡고 기도하면 애정이 두터워지고, 사랑이 이루어지며 소원성취하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연리목을 보며 짧은 소원을 빌고 다시 걸었다. 걸으면서도 설명을 해주시는데, 최치원이 효심이 매우 깊은 것이 이 상림에서도 보인다. 상림에서 벌레를 보고 기겁했던 어머니를 위해 상림이 벌레란 벌레를 없애라고 했다 한다. 그렇게 어질고 효심이 깊은 최치원은 상림에 신도비를 새웠다.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라고 하는데, 근처에 호미를 새긴 돌이 있는데, 아마 그 의미가 행동을 실천한다는 뜻이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매우 신기한 느낌들을 받았던 역사인물공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함양에 좋은 업적 나쁜 업적(?) 새운 여러 함양 태수 등에 대한 비도 새워져 있고, 얼굴를 새겨 그 사람의 업적을 기린 곳도 있었다. 역시나 가운데에는 최치원의 동상이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깐, 아 저 많은 동상들은 얼굴이 그게 그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깐, 최치원의 그 어진 모습이 동상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나오는 길에 열녀비를 보았는데, 함양에 있던 박씨 성을 가진 여자가 열녀가 되었다는 것을 기리는 비였다. 이 열녀비를 보고 사람들이 다들 한 마디씩 하는데, 여자들은 대부분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었다. 물론 나 또 한이었다.^^ 그렇게 열녀비를 보고 끝으로 상림을 나오는 길에 연꽃 밭을 보았다. 나는 이날 연꽃의 뿌리가 연근이라는 것을 처음알고 나의 무식함을(!!) 몸서 깨우쳤다.

 

  그리고 연꽃 밭을 건너 저 산 중턱에 세종의 왕자였던 한남군의 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남군의 이야기도 정말 슬프고 비극적인 내용인데, 다음에 한번 찾아보아야겠다. 그렇게 상림에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얻고 왔다. 그리고 다음으로 함양군청으로 갔다. 함양군청 옆에 있는 함양초등학교도 보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일제 때 이루어진 거라고 한다.

 

 

  함양군관아를 치우고 학교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관아 옆에 있는 학사루는 길 건너편으로 옮겨졌다. 학사루는 사림파인 김종직 함양군수가 유자강의 시를 철거 했고 이건 매우 사적인 이유였다고 한다. 또한 사림들이 모두 축출되는 사건 무오사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학사루는 모습이 매우 조화롭다. 누의 아래와 위, 지붕의 비례가 대단히 안정적이다고 한다.

 

  다음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은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리고 고기들이 가득 들어간 푸짐한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배가 배불러서 많이 못 먹은게 너무 아쉽다. 그렇게 점심을 푸짐하게 먹고, 드디어 창원으로 돌아왔다. 서로 많이 친해지고, 많은 지식과 이야깃거리를 얻어온 것 같아서 이번 블로거 팸투어는 매우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다음에 팸투어를 갈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다시 한 번 갈 것이다.

 

 

 

 

다만... 등산은 빼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