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전 글 설명서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이야기들" 중 하나 입니다. 소설이고요. 미흡하더라도 예쁘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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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과 관련해서 지식이 필요하시다면 검색을 추천하고요. 만약 직접 알고 싶으시다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기본적인 배경으로 용암서원은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 있는 뇌룡정 뒤 용암서원을 말합니다.(검색창에 그냥 용암서원을 치면 다른 지역의 용암서원도 같이 뜹니다.) 그런데 제목이 왜 龍암서원인가? 일단 저 한 자는 용 용자인데요. 자세한 건 글을 읽으면 아실 겁니다. 또 다른 추가 설명으론 용암서원은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는 곳으로 사당과 같이 있고, 집의문은 용암서원의 현관문이라 생각하시면 되고요. 거경당은 용암서원 정 가운데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입니다. 집의문과 거경당은 그 이름 자체가 나름 의미가 있어 찾아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내용을 보시면 연못에서 고요하게 있다가 우뢰 같은 소리를 내고, 시체처럼 있다가 용처럼 나타나라는 말은 뇌룡정에 가보시면 한문으로 나무판에 크게 적어 매달려 있습니다. 보러가시면 더 좋을 것 같기도 (이힣) 합니다.
또 이야기에 대한 짧은 설명은 "별"을 바라보고 있지만 별의 무거움에 지쳐 대형 사고를 치는 용암서원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 '별'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독자에 따라 그 '별'이 어떤 가치? 어떤 괴로움? 어떤 희망을 주는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술이야기가 들어가지만 불건전한 내용은 절대 아니고요. 문학적으로... 부족한 면이 분명 있겠지만, 그 점과 또 이 곳에 대한 설명과 역사 속에 픽션을 넣은 점을 유심히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로 인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합천에 있는 남명 조식과 관련된 문화재에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관심을 가져주시길 또 그로인해 문화재 보존이 더 잘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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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암서원
때는 광해군이 3년을 통치하고 있는 1611년 8월 무더운 어느 여름날. 임진왜란이 조선을 떠난 철새처럼 사라진지13년 후이다. 이 날도 어김없이 용암서원에서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 만약 위 사진이 플레이 되지 않는다면 한 번 클릭해서 창으로 보시면 사진이 바뀔 거예요.
온몸을 조이는 갑갑한 침묵이 사방을 가득 매웠다. 그 가운데 학생들은 가만히 앉아 한 곳만을 쳐다보고 있다. 그곳엔 산신령처럼 희고 긴 수염을 아기 머리를 쓰담 듯 만지고 있는 선생이 근엄하게 앉아있었다.
“남명 슨생께선 이런 말을 했데이.”
했데이- 했데이- 했데이... 탁 트인 공간이라 선생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여러 번 소리가 났다. 그 소리들을 다 튕겨낸 듯 매끄러운 나무 바닥이 보인다.
“깊은 연못처럼 고요~하게 있다가 우레 같은 소리를 내고잉 시체처럼 자빠져 있다가 용처럼 나타나래이”
나타나래이- 나타나래이- 나타나래이... 왼쪽 맨 끝에서 누군가 머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귀를 쫑긋 거렸다. 선생과 자리가 멀어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결코 어깨 아래는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임을 참고 있는 듯 장난 끼 많은 대박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대박은 선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묻기 위해 부룡을 불렀다.
“마-”
‘마’는 쉬- 거리는 바람소리처럼 조용히 대박의 입을 거쳐 부룡의 귀에 도착했다. 부룡은 눈동자로 빠르게 대박을 쳐다보고는 다시 앞을 보았다.
“와.”
‘와’는 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처럼 사뿐히 바닥을 기어 부룡의 입에서 대박과 대박의 옆에 있는 열공이의 귀에 도착했다. 열공는 둘만의 은밀한 대화가 궁금해졌다.
“니들 무슨 얘기하노?”
‘니들 무슨 얘기하노?’는 조약돌이 굴러가는 소리처럼 바닥을 때리며 열공의 입에서 대박과 부룡 그리고 그들 주위에 있는 6명의 귀에 도착했다. 그들은 침묵을 조심스럽게 깨는 열공을 흘깃하고는 다시 앞을 보았다.
“니 말고”
‘니 말고’는 나무로 만든 고물 의자를 살짝 끄는 소리처럼 부룡의 입에서 열공과 열공 주위에 있는 8명의 귀에 도착했다. 열공과 그 8명은 귀를 살짝 찌르는 그 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렸다. 부룡은 갑자기 9명의 시선이 자신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자 살짝 당황하였다. 대박이 이를 알고 열공의 허벅지를 툭 쳤다.
“아- 와!”
‘아-’는 살짝 ‘와!’는 갑자기 열공의 입술사이로 삐져나왔다. 순간 부룡, 대박, 열공의 주위를 감싸던 침묵이라는 매듭이 풀렸다. 그러자 전염병처럼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수염을 만지던 선생의 손이 멈추었다.
“뭐시고?”
뭐시고- 뭐시고- 뭐시고... 진지한 분위기를 쿡 찔러 바람 빠지는 소리가 마루 넘어 마당까지 울렸다. 부룡과 대박 그리고 열공이 허리를 펴고, 팔을 안으로 모은 채 고개를 빠르게 올렸다. 선생의 눈에 그 세 명이 들어왔다.
“부룡 대박 열공. 니들이가.”
니들이가- 니들이가...
“헉!”
‘니들이가’는 뱀처럼 기어와 대박에게 공포를 주더니 혀를 날름거리며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세 명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대박은 순간 입에서 놓쳐버린 ‘헉’을 주워 담지 못해 절망했다.
“나온나.”
무겁게 툭 떨어지는 선생의 말. 그 세 명은 바닥과 혼연일체라도 된 것처럼 멀뚱히 앉아있었다. 선생의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나온나!”
순간 모든 학생들이 눈을 질근거리며 몸을 뒤로 뺐다. 선생의 포효가 거센 바람이 되어 학생들이 앉아있는 마루를 훅하고 지나간 것이다. 그때 부룡이 온몸으로 겁을 참으며 일어섰다. 그러자 뒤에 앉아있던 대박과 열공이 당황하여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짜지?’
‘아~ 부룡이 저 겁도 없는 놈!’
부룡이 나가고, 남은 두 사람은 아직 뭉그적거리며 앉아있었다. 선생의 눈이 그 둘을 향했다.
“이대박하고 노열공은 안 나오나.”
그 둘도 마지못해 앞으로 나갔다. 드디어 세 사람이 모두 앞에 서면 선생이 일어섰다. 학생들은 모두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탁! 학생들이 윽!하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다음 ‘탁!’보다 더 묵직한 소리가 나면 두 손을 모으며 모두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세 사람 중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나면 학생들 중 가장 겁이 많은 학생이 두 손으로 눈을 가려버렸다.
“노열공 니 때문이다!”
어두운 하늘을 향해 부룡의 목소리가 솟아올랐다. 이에 열공은 헤~거리는 얼굴을 내밀려 말했다.
“뭐라고? 와 내 때문인데! 내는 그냥 무슨 얘기하는지 물었을 뿐이데이~”
그러자 대박이 열공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치며 말했다.
“니 취했나? 어디서 그 누런 낯짝을 들이밀고 난리브레레레”
대박의 혓바닥도 취한 것 같다.
“내 안 취했다! 그럼 니는 입에 지렁이를 뒀나 혀를 꼬고 지랄이고!”
“안 취혀헤 으버버 딸꾹”
“에~ 니 취했네!”
털썩... 날이 저물고 여름의 열기가 점점 식어가는 늦은 밤. 주위에선 매미가 울고 있고, 주막에는 혓바닥이 꼬인 애벌레들이 옹알이를 하며 상 위를 기어간다. 침을 질질 흘리고, 눈동자를 뒤집고는 정신을 놓아버린다. 대박도 그렇게 상에 엎어졌다.
“이대박. 이대박! 어... 혀를 꼬고 지랄발광을 다 떨더니 엎어져서 쳐 자네? 야. 깨워봐라.”
부룡은 대박의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왼쪽으로 기울었다 오른쪽으로 기울었다하는 열공의 어깨를 툭툭 쳤다.그러자 열공이 화들짝 깨며 주위를 급하게 둘러본다.
“악! 죽을 죄를 지었습니더 슨생님!”
“... 뭐라노”
“아... 여기 주막이가? 하이고... 하이고... 내 살았데이”
“헛소리 그만하고 대박이 집까지 데려다줘라.”
열공은 셋 중에서 가장 적게 먹어서 그런지 잠기운만 조금 올뿐 취기는 덜했다. 부룡이 하는 말을 곱씹어보는 열공이다.
“...엉? 내가 와!”
“그냥 마 해라. 내는 여서 더 먹다 갈 테니깬.”
“피휴~... 알았다. 그라면 내도 대박이네 갔다가 바로 내 집에 간데이?”
“그래라”
“조깨만 마시고 가래이”
“알았데이”
대박의 팔을 잡아당기며 뒤돌아선 열공.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들어 다시 돌아본다.
“니... 진짜로 조깨만 마시고 집에 바로 들가라잉~”
“알았다고~ 니가 내 마누라가? 와 쓸데없이 참견 질이고!”
열공은 부룡의 빨개진 두 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니... 불안한데...
“알았다! 고마 내 딱 세 잔만 마시고 들어갈게”
“참말이제?”
“어야~”
“내 니말 믿고 간데이?”
순간 그래 설마 더 먹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찜찜하지만 열공은 대박을 부축하며 주막을 나섰다. 홀로 남은 부룡. 오른팔을 번쩍 들며 소리친다.
“주모 여기 술병 하나만 더 주이소”
용암서원.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는 마음으로 후에 지어진 서원이다. 부룡과 대박, 열공이 오늘 낮에 공부하던 곳이다. 그곳에 늦은 밤 부룡의 그림자가 살며시 문 앞에 섰다.
“시~상에 시~상에 우리 남명 슨생께 내가 몹쓸 짓을 할 뻔했데이.”
집의문 앞에 선 부룡은 옷고름을 잔뜩 푼 채 비틀거리며 서있었다. 오른손 손바닥은 어디서 굴렀는지 살갗이 까져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오른쪽 무릎에 흙이 잔뜩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어디서 고꾸라졌을 것이다.
“내 잘 주무이시소~ 하고 절하고 가야제~”
오늘따라 부룡은 술을 과하게 마셔서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이름만 듣던 먼 스승에 대해 늘 갖고 있던 관심이 툭 튀어나왔다. 부룡이 집의문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시체처럼 자빠져 있다가 용처럼 나타나래이~”
부룡의 울부짖음이 메아리가 되어 마을 전체로 퍼져갔다. 마을 곳곳에 있는 집들이 꿈쩍 놀라며 용암서원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용처럼 나타나야 헐 때가 언제고!”
부룡은 울부짖으며 고개를 높이 들었다. 그의 눈에는 별이 들어있었고, 손에는 그 별의 무거움이 들어있었다. 손을 꽉 쥐며 다시 말했다.
“좋다! 내 오늘 한 번 용이 되어보제이!”
그러다 갑자기 부룡에게 무모한 자신감이 생겼다. 부룡의 빨간 볼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전군! 돌격! 내를 따르래이~”
그러더니 갑자기 삼문으로 된 집의문의 가운데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무릎을 가슴까지 올리며 격하게 걷는 부룡은 그 문을 넘어서자마자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으화화화화!!! 이제 내가 용이데이~ 용이라고~”
삼문 중 가운데 문은 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 하여 어칸이라고 한다. 또한 예외적으로 왕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으며 왕이 아닌 자는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들어가게 된다면 가혹한 벌을 면치 못할 것인데, 부룡은 술에 잡혀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부룡의 앞으로 용암서원의 넓은 마당이 보였다. 그 마당을 가운데 두고 왼쪽, 오른쪽, 정면에 건물이 있었다. 그 중 정면에 있는 거경당이 오늘 부룡과 대박, 열공이 공부하던 곳이었다. 그 거경당을 넘어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는 사당 앞에 섰다. 그러더니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냅다 절을 하는 것이다.부룡의 이마가 흙과 풀이 있는 맨바닥에 부딪쳤다.
“절 받으소!”
흙의 진한 냄새라도 맡는지 코로 공기를 훅 빨아들이고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흙이 덕지덕지 묻은 이마를 바닥에 문질렀다. 용이라고 말하기엔 남우세스러운 광경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방이 어두워서 누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한참 바닥과 교감을 하던 부룡이 일어났다.
“하~”
부룡의 입에서 술 냄새가 공기를 타고 퍼져갔다. 빨간 볼도 서서히 식고 있었다.
“이제 고마 가겠습니더~ 슨생님!”
흙 위로 신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 날. 오줌이라도 마려운지 계속 다리를 떨고 있는 부룡이다. 필시 어제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니 오줌 마렵나? 뒷간에 가라.”
“아이다.”
“아니면 와 그래 다리를 떨고 있노.”
대박이 부룡의 오른 다리를 툭툭 건들며 물어 본다. 괜히 짜증이 나는 부룡이다.
“마 신경 끄라! 니가 무슨 상관이노!”
“와마~ 쪼깨 신경 써준다고 지랄하네.”
“...”
신경질 적으로 대박을 밀치며 부룡은 등 돌려 앉았다. 덩달아 기분이 상한 대박은 침 튀겨가며 욕을 했다. 괜히 신경이 쓰인다. 궁금한 것도 있고, 조금 걱정이 돼서 말이다. 대박은 부룡의 술버릇을 안다. 부룡은 술을 먹으면 남들보다 괴상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많이 저지른다. 지금까진 대박과 열공이 막거나 일이 생겨도 뒤처리를 해주었지만, 어제는 혼자 돌려보냈으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니... 어제 잘 돌아갔제?”
대박이 부룡의 등에 대고 말한다. 그러나 계속 다리만 떨뿐 묵묵부답이다. 옆에서 안하던 공부를 하는 열공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어제 부룡을 혼자 두고 가는 것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기엔 이미 늦었다. 열공의 눈에는 부룡이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게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제발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게 되는 하루였다. 그러나 그런 바람도 잠시.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관군들 때문에 세 명은 뒤로 자빠졌다.
“여기 김부룡이라는 자가 있소?”
순간 관군들의 발소리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조용해졌다. 입에 떡이라도 숨겼는지 모두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눈길만큼은 거짓이 없었다.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부룡을 쳐다보는 것이다. 눈치 빠른 관군들이 부룡의 양팔을 잡고 마당으로 끌고 왔다.
“이.. 이게 무슨 짓이라예! 내... 내가 뭐... 뭘 잘 못했다고...”
관군들의 묵직한 힘을 벗어나려는 발버둥도 잠시. 목소리가 작아지고 온몸이 굳는 부룡. 학생들 모두 숨죽여 부룡의 등을 쳐다보았다. 꼭 물에 빠진 생쥐처럼 어깨, 머리, 등이 축 쳐져있었다.
“진정 당신이 한 짓을 모르겠단 말이오?”
“그... 글쎄예... 지.. 지는 모르겠는데예”
“이곳 선생은 알고 계실게요.”
관군이 갑자기 방 안에 쉬고 계시는 선생을 불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을 열고 나오는 선생이다. 선생은 여전히 딱딱한 몸짓으로 걸어온다. 그러나 그 속에는 믿을 수 없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따... 남명 슨생님! 참말로 부룡이 자가 그랬단 말인교..’
선생은 관군과 부룡의 앞에 서선 마른 침을 삼켰다.
“오늘 아침 선생께서 관에다 누가 서원의 가운데 문을 연 것 같다고 말했지 않았소.”
“... 그랬지예”
“그래서 어젯밤 용암서원의 가운데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간 것까지 목격했다는 사람을 찾았소.”
“그래서... 우째되었서예.”
“저 자라는 군.”
관군은 굵직한 검지로 부룡의 이마를 가리켰다. 그 손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선생이다.
“스.. 슨생님”
부룡이 애타게 선생을 불렀다. 이미 파랗게 질린 선생의 얼굴엔 침착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그 눈동자는 앞에 있는 부룡을 담지 못한 채 허공을 쫓고 있었다.
“그.. 그라믄 우째.. 되는 거라예.”
“... 관으로 끌고 가겠습니다.”
선생의 얼굴이 절망적으로 변한 것을 본 관군은 얼른 이 상황을 끝내고 관에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룡을 다시 끌고 오라 말하고는 뒤돌아 집의문을 향해 걸어간다.
“으악! 내 죽을 죄을 지었어예! 잘못했어예! 한 번만 살려주이소!”
양팔을 잡힌 채 두 손을 열심히 비볐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관군들이다.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부룡은 팔에 힘을 주었다.
“아아아!!! 내 우짜면 좋을고!”
그러다 팔을 풀고 도망치면 관군들이 부룡의 양다리를 잡고 끌었다. 기어이 엎어진 채 끌려가는 부룡이다. 저 멀리 거경당 마루 위에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 대박과 열공은 그 불안감의 정체를 알고는 살려 달라고 팔딱이는 고등어 한 마리를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스으윽- 스으윽- 끌려가면서 부룡의 턱, 팔꿈치, 손바닥, 볼이 바닥에 쓸려 상처가 생겼다. 덤으로 온몸으로 뿌리치려고 있으니 더 상처가 생겨났다.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한낱 날개 이른 잠자리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부룡은 끝내 집의문 뒤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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