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청소년탐방대 in 통영편 첫 번째 글 '12공방 장인들의 어느 날' 입니다. 많이 늦었지만.(으흐흑) 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12공방 장인들에게 어느 날 출세를 위한 뇌물을 만들어 달라는 지방 관리의 요청에 잠시 위기를 겪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설정 자체가 픽션이나 옛날에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는 소릴 듣고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건 자체와 사건을 풀어가는 내용은 상상이니 감안하여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2공방이 뭐냐? 궁금하시면 관심을 가지고 알아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검색어 "통제영의 12공방"입니다.
* 아래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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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공방 장인들의 어느 날
먼지를 한 가득 뒤 짚어 쓴 무리가 주석방 건물 뒤와 높은 벽 사이 어두운 곳에 모여 있다. 다들 거친 입을 놀리고 있는 가운데 수줍은 듯 뒤로 물러서 있는 소년이 혹시나 들킬까 주위를 살피고 있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인가. 적당히 맞춰줍시다.”
“할 일이 태산인데 그 놈의 뇌물 만들어 준다고 허리가 아주 나가겠네!”
“그래도 이곳에선 힘 있는 자이니 무시할 순 없습니다.”
“하아...”
그때 쭉 찢어진 눈과 역삼각형 얼굴을 가진 옻칠 장인이 툭 튀어나온 입으로 말한다.
“이참에 본때를 보여주는 건 어떻습니까?”
한 평생 험한 일만 한 듯 우락부락한 몸과 상처투성인 손을 가진 주석방 장인이 험악하게 생긴 얼굴을 더 찌푸리며 말한다.
“뭐 어떻게 말입니까?”
“아주 형편없는 가구를 만들어 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관리들이 우리들에게 뇌물 만드는 일 따위 맞기지 않을 겁니다.”
“그.. 그래도 되는가?”
무리 중에서 가장 체구가 작은 선자방 장인이 근육 덩어리들 사이에서 작은 얼굴을 내밀려 말했다. 그의 소심한 말투에 옻칠 장인이 다시 침을 튀겨가며 말한다.
“무슨 상관이랍니까?! 우리가 가마니입니까? 더 이상 참을 순 없는 노릇입니다!”
모두가 내키는 눈치는 아니지만 부정할 순 없나보다. 반박하는 목소리가 없다. 그때 그들 무리 위로 그림자 하나가 지나간다. 벽 위 높은 곳에 사람이 지나간 것이다. 그러자 다들 화들짝 놀라며 위를 쳐다본다. 그러나 지나간 사람이 그들을 보지 못한 모양인지 벽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안심하고 서로 눈치를 본다.
“크흠.. 일단 흩어진 다음 밤에 다시 봅시다.”
“그러죠.”
부리나케 자리를 떠나는 그들이다.
소목방 장인 밑에서 일을 배우는 19살 소년은 아까 전 벽 아래 들었던 대화가 계속 생각이나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멍 때리고 있는 모습을 장인에게 들킨다.
“뭐하느냐! 어서 나무를 나르지 않고!”
“아.. 죄.. 죄송합니다.”
“쯧쯧... 칠칠맞기는... 네가 12공방에서 가장 덜떨어졌다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내가 얼굴을 못 들고 사는데, 좀 정신을 차리면 어디가 덧나는 게냐?”
“죄송합니다.”
소문이 쉽게 바뀌겠습니까... 소년은 소심하게나마 마음속으로 장인에게 투덜거리며 계속 일을 하였다. 12공방은 방마다 서로 굉장히 끈끈한 관계아래 운영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간의 교류를 하다보면 각 방마다 특징에 대해 알게 되는데, 소목방의 특징은 덜떨어진 놈이 앞으로 장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덜떨어진 놈이 소년이다. 소년도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수제자가 되지 않으려고 했지만 끝까지 소년을 놓지 않고 가르치는 장인 때문에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찔끔 눈물이 고이는 소년이다.
그렇기에 서로 협동도 잘 되는 12공방. 은밀한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소목방 장인은 승진하여 한양으로 가고 싶은 이곳 토막이 관리가 부탁한 ‘뇌물’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관리가 부탁한 것은 나전이 살짝 박힌 서랍장이었다. 옷을 많이 넣어도 될 만큼 큰 서랍장을 원했기 때문에 장인은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나무를 다듬었다. 그러나 나무를 해치거나 망가트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형편없는 가구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작전과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인. 저.. 정말 가구를 망가트릴 것입니까?”
“그래.”
소년이 장인의 옆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혹 누군가 주위에서 듣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장인은 그런 소년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나무를 다듬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이리 열심히 하십니까?”
“구지 내가 망가트리지 않아도 될 것 아니냐.”
“네?”
“그 입 튀어나온 놈 말이다. 옻칠 장인이다. 말을 꺼낸 사람이 하겠지. 나는 평소대로 하면 되느니라.”
“네에...”
그러면서 계속 나무를 다듬는 장인의 이마에서 먼지가 섞인 땀방울이 흘렀다.
늦은 밤. 다시 모인 12공방 장인들은 고된 일을 마친 뒤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소목방 장인도 소년을 데리고 은밀한 장소에 모였다. 그때 주석방 장인이 도깨비 같은 얼굴을 내밀려 말한다. 안 그래도 주위가 어두워 모두가 화들짝 놀란다.
“여긴 어디요.”
“아! 깜짝이야... 안 그래도 험악하게 생긴 얼굴 인상 좀 피고 말하면 어디 덧납니까?”
“내 인상이 어떻다고 그러시오.”
기껏 조용한 장소에 모여 놓고선 다들 고삐를 풀고 으르렁 거렸다. 다들 고집이 세 말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때 이 상황을 정리하고자 옻칠 장인이 두 손을 들며 말한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지금 우리는 몰래 만나는 겁니다. 일단 여기는 내 아는 사람 집입니다.”
“크흠.. 흠.”
모인 이유가 다시 생각이 났는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자 옻칠 장인이 다시 말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어보겠습니다. 가구를 어떻게 망가트릴 것인지 의견을 내어보세요.”
그러나 찾아온 낯선 침묵. 다들 성격에 맞지 않게 입을 다물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로 본인이 가구를 망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옻칠 장인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아니 누구라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때 소목방 장인이 옻칠 장인을 보며 말한다.
“장인께서 말을 꺼냈으니 장인이 하셔야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이요? 에이~ 옻칠로 망치는 것은 바로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건 장인이 하시기 나름 아닙니까?”
“크흠,,,”
말이 없는 옻칠 장인. 이에 소목방 장인이 지그시 눈을 감으며 진지하게 말한다. 괜히 뒤에서 긴장하는 소년이다.
“뇌물로 들어갈 가구에 제가 할 일은 모두 다 마쳤습니다. 다음으로 나전 장인께서 해주셔야 합니다. 장인께서 나전으로 가구를 망칠 생각이 있습니까?”
“아... 나전으로 망치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죠. 늘 완벽하게 완성하는 것만 연습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아마 이 중 누구도 하지 못할 겁니다.”
뒤에서 바들바들 떨며 소년은 장인의 뒷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장인은 어깨도 저 넓은 바다처럼 아득히 넓었고 고요했으며 푸르렀다.
“저도 잠시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출세가 고파 우리를 부리는 관리들이 몹시 미워서 그래도 되겠지 싶었지요. 그런데 늘 하던 것처럼 나무를 다듬다보니 그런 더러운 생각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더.. 더러운...”
옻칠 장인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한 말이, 자신이 생각한 것이 더럽다는 말에 깊은 생각에 빠지는 옻칠 장인이다.
“우리는 장인입니다. 오로지 한 분야만을 갈고 닦아 이름을 걸어도 될 만큼의 수준을 갖춘 사람이라 말입니다. 잠시라도 그런 치졸한 생각에 빠진 제가 한심합니다. 부디 다른 장인들께서도 생각을 바꾸십시오. 고약한 놈들의 뇌물이면 어떻습니까. 그들처럼 뇌물이나 받치지 않는 입장이라 저는 오히려 다행입니다.”
모두가 소목방 장인의 말에 공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얼굴을 부드럽게 펴고 다시 말하는 소목방 장인.
“자 다들 집으로 돌아갑시다. 일하느라 지쳤을 텐데 푹 쉬고 내일 봅시다.”
그러자 다들 일어서며 서로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다만 옻칠 장인만 나가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런 옻칠 장인을 소목방 장인이 흘긋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소년도 그런 장인을 졸졸졸 따라 나갔다.
다음 날 아침. 힘찬 소리를 내며 아침의 활기를 내뿜은 12공방. 소목방도 그윽한 나무냄새를 풍기며 작업 중이다. 오늘은 소년이 꽤 어려운 기술을 배우는 날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해봐라.”
“네!”
장인은 얇은 나무 하나하나를 붙이더니 줄무늬를 만들었다. 소년은 그 모습에 감탄을 하며 박수를 친다.
“와!! 장인 대단하십니다!”
“씁! 방정 떨지 말고 이젠 네가 할 차례다.”
“네!”
소년은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으로 나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 참을 바라보더니 그제야 나무 하나를 든다.
“나무 하나 드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것이냐.”
“기.. 긴장이 됩니다.”
“못해도 좋으니 망설이지 말고 해봐라.”
“네...”
다시 집중하는 소년. 그때 문 넘어 옻칠 장인이 소목방 장인을 부른다.
“저... 자네 잠시 나랑 얘기 좀 하세.”
“... 알겠네. 너는 계속 연습하고.”
“네.”
소목방 장인이 나무 가루들을 밟으며 옻칠 장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문 앞에서 얘기할 생각인 장인에게 옻칠 장인은 계속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한다. 아마 소년이 들으면 안 되는 얘기인가보다. 장인이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문지방을 넘어 옻칠 장인을 지나 마당으로 나갔다. 옻칠 장인도 기죽은 표정으로 그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 소년이 궁금해서 그 둘이 있는 곳을 향해 귀를 쫑긋 거리면 옻칠 장인의 한숨소리만 들렸다. 그러나 대충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연습을 하는 소년. 옻칠 장인은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소목방 장인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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