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편 두 번째입니다. 이번 글은 남명과 망우당 선생을 서로 연관시킨 내용인데요. 남명 선생과 그의 제자인 망우당 선생은 서로 사상이 같습니다. 주장이 강하고 비타협적인 성격도 같았죠. 또한 남명 선생의 외손사위가 망우당 선생이니 그 관계가 굉장히 긴말입니다. 그에 대한 내용으로 주로 보아야할 부분은 '남명과 망우당 선생의 사상이 현대에도 통할까?'입니다. 옛날과 현대가 많이 다르다면 다른 것이니 '주장이 강하고 비타협적이며 고집스럽고 강한' 성격이 마냥 좋은 것일까? 의문을 가지게 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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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에서 망우당까지 – 그들의 사상에 관하여.
역사의 기본 지식까지 모두 기억에서 사라져버릴 만큼 역사 공부를 가까이 하지 못한 나는 경남이야기 청소년 탐방대를 통해 남명 조식과 망우당 곽재우에 대해서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궁금한 점은 아니었으나 알고 보니 더 알고 싶은 그들의 관계가 나를 공부하게끔 만들었다.
평소 역사 공부에 대해 영어나 수학보다 더 관심이 있던 나는 학교를 나오기 전에도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비교적 나와 맞는 국어도 아니고, 전공이었던 음악도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생긴 호기심으로 알아 가다보면 늘 100점을 맞곤 하였다. 역사 공부에 대해 노력을 하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선천적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학교를 나와 검정고시를 칠 때도 국사 공부가 가장 좋았다. 전공이었던 음악은 알았으나 까먹은 것을 다시 배우려니 짜증나고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애정이 적었다. 과연 국사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
현재 내 학력에 고졸을 찍고 나니 이제 공부는 빠이빠이 이겠지? 싶었으나 공부를 안 할수록 두뇌 회전이 느리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나를 보면서 조금 자괴감이 들었다. 특히 이번 경남이야기 청소년 탐방대를 하면서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동급생이랑 비교를 할 수가 없으니 나만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가? 아니면 다들 똑같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건가? 설명을 듣고 장소를 옮기면서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정보가 없으면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글쓰기 전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았다. 그래서 현장과는 조금 다르고 많은 정보를 알게 되면서 탐방과 조금 무관한 방향의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다지 나쁜 면만 있었던 건 아니다. 많은 정보를 습득하면서 나는 더욱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면이 궁금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면 당장 그 부분에 대해 검색을 하였다. 그리고 충분히 논란의 쟁점이 될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남명 조식과 망우당 곽재우의 관계와 그들의 사상에 대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이 글은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각한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물론 다들 아는 소리겠지만 여러 번 강조를 하여도 모자라지 않는 중요한 이야기다. 실천 그리고 행동하다...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특히 나에게는 실천이 곧 기회 그리고 변화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지 않으면 기회도 변화도 오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곽재우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어떻게 하면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실천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힘든 점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나에겐 너무 먼 대한민국의 위인이지만 감히 부러워해본다.
곽재우의 천성이 곧고 바르며 강인했던 것도 있었겠지만, 남명 조식의 제자가 되면서 배움을 통해 망우당 곽재우가 의병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본다.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남명이 망우당에게 전한 그의 사상이 논란의 쟁점이다.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다는 말을 잘 생각해보면 조금 큰 흠집이 있다. 그게 바로 문제점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나 외의 다른 사람들도 공감하는 것이고 이해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나와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실천이 아니꼽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남명과 망우당이 관직에 오르지 않은 것도 그 이유가 조금은 작용했을 거라고 본다. 물론 그 두 사람이 관직에 질린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남명과 그런 남명에게 배우고 자란 망우당은 매우 자기주장이 강하고 타협을 하지 못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꼴을 못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다.’는 조금? 아니 매우 큰 흠집이 있다. 그 흠집은 그 말의 탄생과 함께 생겼을 것이다.
나도 살면서 실천은 했으나 다른 의견의 사람들과 부딪쳐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 특히 고집이 세고 성격도 조금 모났던 과거의 나는 소통하는 것을 중요시 생각하지 않아 의도와는 다르게 좋지 않은 결과에 도달하고 말 때가 많았다. 더 먼 과거 때는 더욱 그러하였다. 자신의 감정이 가장 중요했던 어린 시절은 나의 실천이 폭풍을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내 생각 그리고 이 말과는 다르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지만 점점 든다. 성숙해지는 아주 첫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일까? 변화를 시도하는 나의 모든 면이 적응이 안 될 정도로 컸다.
그렇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던 지난날의 경험을 이제 안 겪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큰 문제가 아니니 작은 것부터 하나 씩 바꾸면 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역지사지정신을 나의 방식에 맞게 실천하면 되었다. 스스로 타협하고 이해를 하면 되었다.
만약 이 소리를 남명 선생이나 망우당 선생이 들었다면 무슨 똥 같은 소리냐며 나를 훈계했었을 것 같다. 그 사상과 신념을 끝까지 가진 채 생을 마감하셨으니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위인이지만 나의 생각과는 달라서 아니... 나는 현대에 살고 있으니 남명이나 망우당 선생의 사상이 나에게 맞더라도 그러면 안 된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 노력을 하면 조금 더 삶이 평탄해질 것 같아서 이렇게 우기듯 말하는 것 같다. 분명 훌륭한 사람이었으나 시대가 알아주지 못해 현대에 와서 그 이름이 빛나지 못한 남명 선생에 비해 퇴계 이황 선생은 지폐에도 나오는 것처럼 현대는 자신의 의견을 가지면서 타협할 줄 아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나는 그런 퇴계 이황 선생의 발톱이라도 따라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럼에도 남명과 망우당이 대한민국의 위인이 된 이유는 그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타당하다. 많은 분야에 대해 공부를 했고 겸손하며, 자신이 나라에 필요할 때는 기꺼이 나가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현대에 와서도 이렇듯 존경을 받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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