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의령편입니다. 의령편은 꽤 많이 썼습니다. 총 4개로 먼저 첫 번째 '전쟁이 아닌 정치적으로 봤을 때 곽재우의 위치'입니다. 전쟁 때의 위치와 정치적 위치가 매우 다른 곽재우 선생을 보고 드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스토리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주장문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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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정치적으로 봤을 때 곽재우의 위치.
임진왜란으로 인해 어수선한 조선은 치열했던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정치적 다툼의 조짐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쟁 당시 왜군에 맞서 경상우도를 책임졌던 의병장 곽재우도 이를 피할 순 없었다. 그런 곽재우에게는 조선 안에서의 정치적 다툼이 전쟁보다 더 험악하였다.
위기의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이에게 전쟁이 끝난 후 그에 마땅한 대가를 주는 것은 당연했다. 명예가 되었든 경제적은 면이 되었든 이는 목숨을 기꺼이 바친 이들에게 주었음에도 미안하기 그지없는 지나치게 작은 대가였다. 그러나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때가 아무리 몇 백 년 전 조선이라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하필 왕이 그 모양이었으니 과연 그 작은 대가가 무사히 영웅들에게 전해졌을까.
“이순신이나 원균, 권율이라면 모를까 그 나머지는 나는 모른다. 그 네 사람의 공로 쯤 되어야 내가 알 것이 아닌가.”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는 곽재우는 고사하고 다른 의병 그리고 전쟁에 참가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곽재우만큼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과거 시험 때 답으로 내놓았던 글이나 전쟁 당시 비타협적인 면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들어... 왕인 내게도 무례한 말을 하지 않는가. 아무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의병장이라도 용서할 수 없어.’
조선의 땅이 불길에 휩싸일 때, 임금인 자신은 숨었던 것 때문에 깎인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건지 선조는 생각을 감추고 뻔뻔하게 말하였다.
당시 선조는 곽재우를 미워했던 것도 모자라 의심까지 하였다. 전쟁 당시 고집스럽고 거칠었던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임금의 의심은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더욱 깊어졌다. 잇따른 전쟁에 곽재우는 다시 경상좌도 방어사에 기용되었다. 그러나 그의 활약상을 여기선 볼 수 없었다. 계모 허씨가 별세하였기 때문이다. 복상 중에도 기복(어버이의 상중에 벼슬자리에 나감.)하라는 명령이 몇 차례 내려졌지만 그럴 때마다 곽재우는 상중이라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그러는 동안 전쟁은 끝이 났고, 상을 끝낸 곽재우는 48세의 나이에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그 지역의 군무를 총괄하였다.
그러나 곽재우는 정치적 갈등에 미감하게 대응하여 그 후로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그의 엉클어지는 인생에 대해 누가 잘못한 것인가 생각을 해보면.
곽재우의 성격 때문.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지들끼리 싸우는 조정 때문.
으로 갈린다. 그러나 이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거친 성격을 조금 낮추었으면, 나라가 서로 협동하여 잘 살길 도모하였으면 곽재우를 비롯하여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이 점점 궁핍해지고 병약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엔 전쟁에 참가했던 다수의 사람들이 종전 후 삶이 힘들어졌다고 한다.
곽재우의 거친 성품에 맞서 그를 미워했던 선조는 결국 그가 왕의 허락도 없이 사직을 하자 전라도 영암으로 3년간 유배를 보냈다. 잇따른 사직에 대한 선조의 노여움이 가득 느껴지는 3년이었을 것이다.
곽재우는 유배를 마치고 영산(지금의 창녕) 창안에 망우정을 짓고 숨어 살았다. 다시 관직이 내려져 서울에 올라가기도 하였으나 그의 노쇠한 몸이 따라주질 않아 다시 망우정에 돌아와 남은 생을 보내게 되었다. 그에게 훌륭한 업적이 있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이렇게 자신을 숨기고 살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글쓴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관심 있었던 도교(어릴 적 학문을 쌓을 때 배웠던 것.)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그가 도인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정치가 질리고 두려웠기 때문에.
글쓴이는 이 둘 중 표면적으로 첫 번째. 내면적으로는 두 번째일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은 곽재우란 인물은 강인했다. 스스로 의병을 모았던 것, 그 의병 활동을 위해 모든 재산을 탕진했던 것, 전쟁 당시 자신의 주장에 대해 굳건했던 것 등을 보건대 그는 우직하고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인 ‘정치’에 대해 자신의 의견만 내세웠던 지난날을 보면서 자신의 힘이 그리 대단치 않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고 본다. 그 때문에 정신이 피폐해지거나 약해진 것은 아니다. 쉽게 약해질 인물은 결단코 아니었다. 다만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인 만큼. 정치란 것은 단 한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자신이 아무리 강하고 우직한들 받아주지 않으면 언제든 목숨을 잃고 말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곽재우는 그만큼 영리한 사람이었으니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도인이 되는 것보다 불가항력적인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이 더 어리석은 일일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즉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정치에 관여하였다면 조금이라도 더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전쟁은 불가항력적인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건대 전쟁보다 정치가 더 무서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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