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편 세 번째입니다. 이번에는 전쟁이 끝난 뒤 관직을 여러 번 사직하다가 결국 망우정이라는 작은 정자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곽재우가 결국 죽음을 마지하기 불과 몇 일 전의 내용을 제가 상상하여 만든 글입니다. 여기서 곽재우 선생의 친구라는 가상 인물이 존재합니다. 그 친구가 곽재우 선생의 깊어진 병 때문에 찾았다가 돌아가면서 드는 생각이 가장 핵심 내용인데요. 왜 망우정에 은거했을까? 가 쟁점입니다.
-----------------------------------------------------
망우정의 도인 곽재우.
때는 1617년.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이 보이는 망우정에서의 일이다. 65세의 노쇠한 나이에 접어든 망우당 곽재우는 그해 3월. 병이 깊어지자 치료를 중단하였다. 그가 걱정되어 찾아온 친구가 그를 보며 말했다.
“고집부리지 말고 치료하시게.”
그러나 그 고집이 어디 가겠는가. 주름진 뺨에 검버섯이 오른 얼굴로 그가 말했다.
“죽음을 거스를 순 없네.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그의 똥고집을 잘 아는 친구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곳 망우정에 은거하며 익힌 쌀을 멀리하고 풀 같지 생것을 먹으며 살아왔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운 그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또,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죄가 무엇이기에 저렇게 혹독한 생활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그를 말릴 사람도 없었기에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명도 수차례 거절한 그이니 오죽했겠는가.
그는 마치 험난했던 지난날을 모두 거친 도인처럼 보였다. 흰머리와 흰수염이 잘 어울리고 궁핍한 생활이 다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도인’ 말이다. 그러나 광대뼈가 보일만큼 마른 그의 모습은 매우 쓸쓸하게 보였다. 그럴 때면 그의 은거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죽음의 마차를 기다리는 그는 햇빛을 가려버린 칙칙한 구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차가 저곳에서 올 예정인 것처럼 멍하게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가 온몸이 부서져라 기침을 하면 친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등을 토닥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3월 마지막 날인 오늘 더욱 불안하게 날씨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친구는 저녁이 되어서야 그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오랜만에 왔으나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그는 돌아갈 채비를 하는 친구를 잠시 도와주다가 손을 거두며 말했다.
“이젠 올 필요 없으니 앞으로 오지 말게.”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불순한 마음으로 자네를 찾아오는 걸로 보이는가?”
그의 차가운 말투에 친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동작을 멈추었다. 이젠 짐만 등에 매면 되었다. 여전히 표정을 알 수 없는 그가 다시 말했다.
“자네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닐세. 하지만 자네가 무거운 마음으로 여길 찾아오는 것을 원치 않네. 자네 나를 보며 계속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지 않는가.”
“걱정하는 걸세. 당연한 거 아닌가. 다 자네를 걱정하여 그러는 걸 왜 밀어내는가.”
“내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러는 걸세. 그러니 앞으로 오지 말게.”
그의 단호함에는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죽음? 친구는 더욱더 짓눌리는 마음 때문에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곧이어 그가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 곧 이 세상을 떠날 것 같으니. 떠나고 나서 오시게. 더 이상 토 달지 말고.”
그러자 친구는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그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좋지는 않으나 그가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삶을 마칠 때까지 마저 사는 것이 그가 편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알았네.”
“조심히 가게. 자네도 나만큼 나이 먹은 몸이니 각별히 신경을 써야할 테야.”
다음 말을 하지 않고 짐을 등에 맨 채 뒤돌아선 친구는 망우정의 좁은 마당을 지나 나가는 문 앞에 섰다. 그때 등 뒤에서 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아 고개를 뒤로 돌아보았다. 그는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도 마루에 등을 대고 누어있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과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보였다. 역시 힘내라는 예의상의 말은 할 수 없었다. 친구는 문밖으로 나갔다.
돌아가는 길. 그의 떨리는 속눈썹이 계속 머릿속을 휘젓고 있어 망우당의 친구는 괴로운 얼굴로 자신의 짚신을 보며 걷고 있었다. 같은 노쇠한 나이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망우당을 보며 친구는 오만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그는 벌을 받을지언정 자신의 신념을 결코 굽히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강인했고, 존경할만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망우정에 자신을 숨기며 사는 망우당을 보며 친구는 그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과연 무슨 이유로 망우정에 은거하였을까. 그의 명성으로도 궁핍한 생활은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왕의 부름에 응했다면 호화로운 인생을 살며 삶을 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을 숨기는 것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망우당의 친구는 걷다가 갑자기 멈춰서며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았다. 알 것도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살아왔던 지난 인생들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유야 충분히 있었다. 또한 그의 성격상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세상에 맞추며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만이 아닐 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건 무엇일까.
그의 떨림. 과연 죽음에 대한 떨림이었을까. 그가 살아왔던 지난 세상과 앞으로 자신이 죽고 나서도 존재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홍의 장군. 망우당 곽재우에게도 두려움이 존재하였을까?
'인턴쉽 > 친구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남이야기 청소년탐방대] 8월 24일 탐방 후기 합천편 첫 번째. 보호수/남명의 생가. (1) | 2014.11.12 |
---|---|
[경남이야기 청소년탐방대 의령편] 개성만점! 청춘들의 즉석 토론!! - 전쟁과 의병. (1) | 2014.11.09 |
[경남이야기 청소년탐방대 의령편] 남명에서 망우당까지 – 그들의 사상에 관하여. (0) | 2014.11.09 |
[경남이야기 청소년탐방대 의령편] 전쟁이 아닌 정치적으로 봤을 때 곽재우의 위치. (0) | 2014.11.09 |
[정은희/HiJ] 경남이야기 청소년탐방대 통영편 - 12공방 장인들의 어느 날 (1) | 2014.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