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편 마지막입니다. 이번 글은 남명 조식 선생과 망우당 곽재우 선생에 대해 배우면서 알게 된 내용을 통해 즉석 토론을 하는 5명의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는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5명 모두 다른 성격과 말투, 의견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현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남북한의 전쟁 발발과 그 전쟁에서 의병이 일어날까? 만약 일어난 다면 너는 할 것인가? 의병을 하기에 조건이 필요한가? 등으로 '즉석' 토론이기 때문에 토론의 쟁점이 자주 바뀝니다. 즉석이니깐요.
마지막 결말에는 저의 의견이 들어갑니다. 전쟁보다 전쟁 후가 더 중요하다. 나는 그 후에 나의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의병을 안 한다고 욕 먹을 필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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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만점! 청춘들의 즉석 토론!! - 전쟁과 의병.
북적거리는 도심에서 벗어난 한 고등학교. 점심시간이 반쯤 지난 지금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방방 뛰며 학교 내에서의 자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에 반해 조금은 조용한 학교 도서실. 글누리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촌스럽고 지극히 평범한 이 도서실은 제 딴에는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들린 학생들도 붐볐다. 그 가운데 묘한 그룹이 있었으니 그들은 도서실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긴 책상들 가운데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빈정거리는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그 무리에서 툭 튀어나왔다.
“아~ 이놈의 나라는 어쩌면 좋냐.”
지태가 의자에 몸을 축 늘어트리며 말하였다. 아니꼽게 씰룩거리는 윗입술이 투덜대는 목소리와 잘 어울렸다. 그러자 옆에서 공부를 하던 수진이 무슨 소리냐며 순진한 얼굴로 오른쪽에 있던 지태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왜? 뭐가?”
그녀의 말을 받아치는 지태의 얼굴은 어쩔 수 없군.. 피곤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요새 사건 사고가 많잖아. 그때마다 우리나라가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어. 예방도 해결도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이러다가 갑자기 북한이랑 전쟁이라도 나면 우린 어쩌냐?”
그러자 옆에 있던 민지와 백희의 말이 불에 기름을 붙듯 분위기를 달아 올렸다. 먼저 민지가 말하였다.
“우리나라 아주 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이겠냐? 다른 나라들도 그래. 나쁜 일 생기면 나라 탓하는 게 가장 편해. 맞는 말일 때도 있고.”
이에 백희가 반박하듯 펼쳐 놓은 책을 덮으며 말하였다.
“탓만 하지 말고, 나서서 바꿔야지. 나라가 정부만 잘 돌아간다고 되니? 우리도 의견을 내세우고 옳은 의견을 정한 다음 바른 방향을 가면 전쟁이 일어나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당장은 안 되겠지만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지.”
다시 지태가 백희에게 말하였다. 빈정거리는 태도는 여전했다.
“뭔 꿈같은 소리야.”
“투덜대지 말고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전쟁이 꼭 정부만의 문제니?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해. 그러니깐 모두 힘을 합쳐서 이겨내려고 할 거야.”
그때였다. 옆에서 낡고 굵직한 책을 왼손으로 바치고 오른손으로 넘기며 보고 있던 유진이 무덤덤한 말투로 먹이를 던졌다. 그러자 나머지 4명이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가 되어 달려들었다.
“그래서 너희들은 전쟁이 나면 사람들이 나서서 싸울 거라고 생각해?”
선발투수는 지태였다.
“켁. 사람들이? 나서서 싸운다고? 꿈같은 소리하시네! 요즘이 옛날이랑 같아? 다 무서워서 줄행랑칠걸?”
그때 비교적 조용했던 수진이 아주 밝게 웃으며 말하였다. 그녀의 얼굴은 매끄럽고 윤이 나는 것이 꼭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부처님 같았다.
“하면 되지~ 실천하면 되.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옛날 의병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랬남? 나도 할 거야라고 생각하면 하는 거야~”
그 순간 유진이 책을 넘기던 손을 멈추었고, 지태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수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마찬가지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며 아무 말 없던 민지와 백희가 헛기침을 하며 말하였다.
“크흠.. 수진아. 너 너무 긍정적인 거 아니야? 옛날 의병이나 의병장을 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좀... 뭐랄까... 좀 타고 난 것이 있었어. 재력이라든지 능력이라든지. 일단은 목숨을 내놓을 만큼 마음이 강해야지.”
“지금 봐선 지태랑 민지는 사람들이 쉽게 말해서 의병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수진이랑 같은 생각이야. 하면 되. 물론 힘들겠지. 그렇지만 옛날에도 해왔잖아. 구지 먼 과거가 아니더라도 199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 같이 모두가 합심해서 의견을 내고, 희생이 따랐지만 이겨낸 경우가 있잖아?”
그러자 옆에서 다시 무심하게 책을 읽던 유진이 오른손을 살짝 올리면서 말했다.
“나는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
“야! 그건 또 뭔 말이냐?”
유진의 말에 지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백희가 그를 저지하며 말하였다.
“그러면 넌 의병을 일으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지. 나라가 다 알아서 할 수 있겠냐?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다 지들 아니면 지들 가족들만 생각해서 분명 죄다 도망만 칠거란 거야.”
그때 민지가 비웃으며 말하였다.
“그럼 넌 안 도망친다는 거야?”
“그래!”
“베~”
“뭐냐? 지금 나 비웃는 거야? 뭐! 내가 도망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흥!”
“이게!”
마지막으로 민지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리자 지태가 책상을 양손바닥으로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도서실에 있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조용함을 무참히 깨부순 지태를 쳐다보았다. 옆에 있던 수진이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지태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그는 계속 서있는 채로 정면에 앉아있는 민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안 도망칠 거거든?”
“뭐야? 그럼 넌 특별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거야? 베~ 말도 안 돼!”
“아씨! 난 안 도망칠 거라고!”
지태의 화남이 투정으로 보이자 민지가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백희는 민지의 옆에서 손바닥으로 턱을 받친 채 그 상황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난 말이야. 사람들이 아무리 후천적인 것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선천적인 것이 가장 그 사람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거든?특히 요즘은 옛날보다 타고난 것 때문에 열등감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외모, 재력, 두뇌, 체격 같은 거 말이야. 옛날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곽재우 있잖아? 그 사람은 의병을 모으고 유지할 때 자신의 재산을 다 탕진했어. 처음으로 모인 의병들도 거의 자신의 노비들이었고. 만약 곽재우가 평민이고, 노비나 재산도 없었다면 과연 의병장이 되었을까? 난 안 그렇다고 생각하거든!”
옆에서 백희가 민지의 옆모습을 보며 말하였다. 턱을 받친 채 말하느라 말투가 어눌하게 들렸다.
“나는 곽재우가 의병장이 된 이유에 있어서 재력보단 그 사람의 용기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용기가 없었으면 아무리 재산이 많았어도 못했을 거야. 그 시대에 재산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곽재우뿐이었을까? 그러면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왜 다 의병을 하지 않았던 건데? 지태의 말대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때도 있었어. 그래도 임진왜란 때 의병들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잖아.”
그러자 지태가 옆에 있던 수진에 의해 억지로 의자에 앉으며 말하였다. 화를 꾹 참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맞아. 재산보다 중요한 것은 용기야. 설마 너 그런 용기도 타고난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해. 그런 능력도 선천적인 거라고 생각해.”
지태의 물음에 답한 민지의 말에는 강한 고집이 느껴졌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믿음 보다는 그렇다고, 그럴 수밖에 없는 거라고 믿고 싶은 눈치였다. 그런 느낌을 민지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이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건 좀...”
수진이 난처한 얼굴로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말을 꺼냈지만 백희가 가로막으며 말하였다. 유진은 여전히 책을 보고 있었다.
“곽재우는 16세기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의 제자였어. 게다가 외손사위였고. 곽재우는 유년기에 남명을 만나 그런 용기를 얻는 법을 배웠을 거야. 남명 조식이 제자들에게 기본적인 것 외에도 병법 같은 다른 것도 가르쳤다고 하잖아? 좋은 선생을 만나 잘 배워서 곽재우는 생각을 실천하는 성격이 되었을 거야. 그리고 곽재우 외에도 남명 조식의 제자들이 임진왜란 때 의병들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남명의 제자인 정인홍도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어.”
백희의 논리적인 말에도 민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태는 복잡하고 어려운 역사이야기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는 것이 적어서 말할 것도 없었다.
“곽재우가 남명을 만난 것은 곽재우의 집이 명문가였기 때문이야. 남명의 다른 제자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곽재우가 특별히 외손사위가 된 것은 명문가이기 때문이기도 할 거야.”
“남명 조식 선생이 그런 걸로 외손사위를 삼진 않았어. 곽재우를 보고 영민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외손사위로 삼은 거라고.”
“그래도!”
민지가 계속 우기자 지태가 말을 가로막으며 말하였다.
“그래. 니 똥 굵다!”
그때였다. 계속 책만 읽던 유진이 그 무거운 책을 책상에 조용히 올리며 말하는 것이다. 책에서 벗어난 눈길이 나머지 4명을 훑어보고 있었다.
“곽재우와 정인홍 둘 다 임진왜란 후에 그다지 평탄하게 살지 못했어. 곽재우는 계속 관직을 피하며 망우정이라는 작은 정자에서 은거하다가 쓸쓸하게 죽었고, 정인홍은 광해군의 총애를 받으며 영의정까지 올랐지만 인조반정이 일어난 다음 처형당했어. 그 사람들의 인생이 그다지 대단치 않았다는 거야. 나는 그렇게 되니 차라리 나라에게 맡긴다는 거고. 나는 곽재우나 정인홍처럼 그 다음까지 모두 이겨낼 자신이 없거든. 또 목숨을 걸고 나라는 지킬 만큼 나는 지태가 말하는 것처럼 덜 이기적이지도 않아. 못났지만 다른 누군가가 의병을 하겠거니 생각하는 면도 있어. 중요한 건 태생이 잘난 것도 후천적으로 많이 배운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도 요즘 사람들이 이기적이라서 다 도망친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자신의 역할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의병을 안 한 사람이 욕먹을 필욘 없어. 그런 쪽에 특출한 사람만이 제일 잘난 사람도 아니고. 정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 전쟁보다 두려운 것은 전쟁 후야. 나는 그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 싸워서 이기는 것보단 소통해서 서로 잘살길 협력하는 것이 나에게 더 맞아. 뭐 전쟁이 안 일어나는 것이 더 좋겠지만 말이야.”
유진이의 갑작스러운 긴 말은 모두의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말하던 민지도 왠지 대꾸를 할 수가 없어 조용히 있었다. 여전히 투덜대는 지태만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쳇. 지 혼자만 멋있는 말하고...”
종이 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 도서실에서 나와야했지만 모두가 지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유진만이 태연하게 책을 챙기며 도서실을 나서며 말하였다.
“종 쳤어. 나가자. 지금 우리들의 역할은 학생이야.”
4개의 의자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치열했던 토론 현장에서 모두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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